정말 순정만화 같은 영화

2008.10.23 / 조숙현 기자

인적 드문 오솔길을 지나 보이는 한적한 주택가 속에 폭 파묻혀 있는 강동구 고덕2동사무소. 초가을 하늘 아래 다섯 평 남짓한 앞마당에 작은 바자회가 열렸다. 몇 대의 자전거,
헌 옷가지와 사연이 담긴 카메라 사이로 수줍은 시선을 주고받는 남녀의 모습을 카메라가 조심스레 쫓는다. 여기는 류장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순정만화>(제작 ㈜렛츠필름)의 촬영 현장이다.

<순정만화>는 2003년 미디어 다음에 연재되며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강풀의 첫 번째 장편만화로 같은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그것도 막바지다. 4월 1일 크랭크인 한 후 어느덧 촬영 3회 분량만을 남겨둔 영화
<순정만화>. 오늘 촬영분은 연우(유지태)와 숙(강인)이 근무하는 동사무소에서 열린 바자회에 수영(이연희)과 하경(채정안)이 방문, 네 사람이 우연히 맞닥뜨리며 서로의 인연을 감지하는 장면이다.

하경이 사랑의 추억이 담긴 카메라를 바자회에 내놓고 수영이 이를 갖게 된다는 설정. 별다른 사건 없이 짤막한 대사만 나눈 채 지나치는 장면이지만 네 명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단 두 장면 중 첫 번째 장면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촬영 스케줄은 막바지로 접어들었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설렘으로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단계.



배우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입시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통제 변수가 많은 야외 촬영인 탓에, 가볍고 밝은 영화 속 세상과는 달리 촬영 스탭들은 조그만 잡음, 움직임 하나에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연우와 수영의 친구 다정이 대면하는 장면인 신 45의 네 번째 테이크 때에는 주택가 사이를 지나가는 오토바이의 소음으로 인해 촬영이 중단돼 현장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이날은 만화가 강풀도 현장을 찾았다. 그의 만화는 언제나 인기를 끌었지만 <아파트> <바보> 등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전작들은 완성도나 상업성이 원작의 기대에 못 미친 감이 있었다. 강풀은 자칫 전편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촬영장을 찾았단다. “<순정만화> 같은 경우는 전편들과 다르게 시나리오가 매우 좋았다. <순정만화>의 기본적 상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순정만화>의 가장 큰 미덕인 소시민들의 따뜻한 정서가 섬세하게 살아 있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류장하 감독이 3고를 집필했을 때부터 OK를 줬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순정만화>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띠동갑 커플 연우와 수영, 연상 연하 커플 하경과 숙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맑은 사랑 이야기다. 기본적인 골격은 원작에서 가져왔지만 압축적이고 빠른 영화 전개를 위해 연우와 숙이 같은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등 원작과는 다르게 조금씩 설정의 변화를 주었다. 오늘 촬영하는 바자회 장면도 원작에는 나오지 않은 장면. <꽃피는 봄이 오면>에 이어 두 번째 장편영화 연출을 맡은 류장하 감독은 왜 <순정만화>를 택했냐는 질문에 “워낙 인기 있는 원작을 영화화한다는 데 부담감도 느꼈지만 내가 <순정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따뜻한 마음을 ‘사랑을 시작하는 아침’과 같은 느낌으로 꼭 한번 영화로 재현해보고 싶었다”며 웃는다.

제작비, 배우 스케줄 조정 등에 치여 어렵게 잡은 촬영 스케줄에 흠이 생기지는 않을까 시종일관 날카로운 제작진과는 달리, 배우들의 표정은 가을 소풍이라도 나온 양 가볍고 평화롭다. 연우 역의 유지태는 그 자신도 착실히 단편영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감독답게 현장의 분주함마저 여유로운 미소로 어우르는 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미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찍으며 당시 조감독 출신의 류 감독과 현장 호흡을 함께한 바 있는 그는 감독의 특별한 디렉션 없이도 촬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주도한다.

당돌한 여고생 수영 역은 배우 이연희가 맡았다. 그는 ‘차세대 대표 여배우’라는 호들갑스러운 주변 반응과는 달리 “수영은 그냥 내 여고 시절 모습이나 내 친구들을 바라볼 때처럼 편하다”며 소탈하게 촬영장 분위기에 녹아든다. 하경의 상대역이자 연우가 근무하는 동사무소의 공익근무요원인 강숙 역을 맡은 슈퍼주니어의 강인은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때에는 정신없이 촬영에 임했지만 지금은 정말 배우가 된 기분이다”라며 아이돌 이미지를 씻어내고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대여섯 번 이상 반복되는 연습과 테이크에도 성실하게 촬영에 임했다. 연상녀 하경 역은 배우 채정안이 맡아, 최근작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와 같이 성숙한 여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여기에 소녀시대의 수영이 수영의 친구 다정으로 등장, 생기 넘치는 신인 배우답게 현장 분위기를 활발하게 꾸려간다.

촬영장에서 부딪치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배우들의 스케줄 조정 문제. 워낙 주목받는 톱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하루에도 몇 번씩 스케줄 재조정을 위해 제작진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장소를 골라 로케이션으로 정한 제작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문을 듣고 현장에 몰려든 주민들과 학생들이 흐트러뜨리는 촬영장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촬영감독 외 스탭들이 총동원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소시민들의 모나지 않은 훈훈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류 감독이 그려내는 <순정만화>는, ‘사랑의 아침’과 같은 풋풋한 느낌의 맑은 사랑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목표 아래 10월 9일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11월 27일 관객을 찾을 예정이다. 사진 백지연






출처: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188611